2010년 4월 1일 목요일

[서평] 뇌 생각의 출현-김동억

[신동아]

‘뇌 생각의 출현’: 박문호 지음, 휴머니스트, 502쪽, 2만5000원


우리의 뇌는 소우주라고도 한다. 양자우주론에 따르면 뇌를 통한 관찰이 없다면 우주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고 우주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우주는 언제 어떻게 생겼고, 우리와 우리의 뇌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주와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가? ‘뇌 생각의 출현’은 이러한 질문을 품고30년간 뇌신경학을‘공부’해온 박문호 박사의 첫 번째 책이다.

어디서나 필요한 ‘과학적 사고’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년이고 빅뱅 이후 점점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1000억개의 은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어져서 1500억년 후에는 관측 가능한 은하의 숫자가 수천개로 줄어든다고 한다. 현재 관측 가능한 은하의 수와 같은 숫자인 1000억개의 뇌신경세포를 가진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천문학자 골드스미스에 따르면, 수십억년 전에 우주 어딘가에서 수명을 다하고 폭발하면서 사라진 초신성이 뿌린 잔해(무거운 원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모두 별의 후손이며, 진화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초신성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는 지적 수준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모든 연구자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냥 덮어놓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논리의 논리를 따라가보면 타당성이 충분히 있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자 과학적인 추측이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1682년에 나타난 혜성은 지구의 종말을 비롯해 각종 비극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져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 혜성의 최초 발견자인 핼리는 당대 최고 과학자인 뉴턴을 찾아갔다. 뉴턴은 너무도 태연히 20년 전부터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바에 의하면 혜성은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힘의 영향을 받아 타원 궤도를 그린다고 대답했다. 이에 따라 핼리는 과거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혜성이 1758년에 다시 나타난다고 예측했고, 이것은 정확하게 맞았다. 탄탄한 과학적 논리에 기반을 둔 예측이나 추측은 쉽게 폄하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방대한 분량의 뇌신경학 공부를 오랜 기간 해왔고, 매일 과학을 끼고 사는 게 분명한 저자는 ‘대중의 과학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과학적 세계관이 확고해질수록 많은 사람이 미래를 더 잘 예측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과학적 사고는 어디서나 필요하다.

뇌졸중으로 우측 마비가 생겨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믿는 환자가 얼마 전에 입원한 적이 있다. 외부 병원에서 찍은 뇌 MRI를 살펴보니 우측 뇌에서 2개의 뇌경색이 관찰되었다. 마비는 하지뿐 아니라 상지에도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환자를 강력히 설득해서 경추 MRI를 찍도록 하는 것이다. 우측 뇌의 뇌경색은 우측이 아닌 좌측에 마비를 일으켜야 한다 (책의 멋진 컬러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뇌 MRI 소견은 환자의 증상에 대한 설명이 전혀 안 된다. 하지와 함께 상지도 마비되려면 뇌에서 내려와 상하지로 가는 운동신경 중 상지로 가는 신경이 빠져나가기 전 위치, 즉 (상지가 허리 밑이 아닌 목 밑에 달려 있으므로) 목 부위의 척수에 병변이 있어야 한다. 경추 MRI를 찍어보니 우리가 예측한 바로 그 위치에 척수를 심하게 누르고 있는 디스크가 발견됐다. 늦게 발견했으면 증상이 악화돼 평생 못 걸을 수도 있을 환자였다. 과학적 사고는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상식도 업그레이드해야

과학적 사고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는 많지만 상식도 노력을 통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살기 쉽다.

나이를 먹으면서 전두엽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하면 mental flexibility 즉 융통성이 떨어질 수 있다. 사고의 유연성은 점차 감소하는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믿게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근거가 불분명한 과거의 상식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은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움직임이고, 감정(emotion)은 판단과 관련되어 바깥으로 표출된 운동, 즉 이e(out) + 모션(motion) 이다.

진료를 하다 보면 가끔 예약시간에 맞추어 왔는데 왜 제 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없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며 병원과 의료진에 대해 거친 언사를 내뱉는 소리가 진료실 안까지 들릴 때가 있다. 언론의 단골 질타 대상인 ‘3시간 대기 30초 진료’가 한국의 의료보험제도와 병원 경영상의 문제를 포함한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발생한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 아직까지는 지나치게 많은 외래 환자를 짧은 진료 시간에 밀어넣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제 시간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까? 간단하다. 앞 시간에 예약된 환자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어기고 늦게 오는 바람에 특정 시간대에 환자가 너무 많이 몰리면 제 시간에 온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해주면 환자의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멋쩍어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쉽게 화내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이런 감정이 우리 몸에 좋을 리 없다. 사소한 일상생활의 문제도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주변의 의견이나 정보를 수집한 후 자신만의 가설을 세우고 확인해보는 것, 이것도 과학이다.

3년 전에 하버드 의대 신경과장인 앤 영 박사를 초대한 일이 있다. 앤 영 박사는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이자 세계적으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매사추세츠종합병원 2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과장이다. 1주일을 같이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포스닥(박사학위 취득 이후) 연구원을 뽑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차고(garage)에서라도 과학을 할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교수 숫자만 9000명이 넘는 하버드 의대가 정말 좋은 차고이긴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학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공학이 전공인 저자가 꾸준한 공부를 통해 뇌신경과학 분야의 전문가도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겠다는 결심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바라는 ‘대중의 과학화’로 가는 첫 단계일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기에 자신의 독서 호흡이 좀 짧다고 느낀다면, 뇌신경과학과 우주론 및 일반생물학에 대한 내용을 충실하게 담고 있는 믿음직한 사전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궁금한 것을 그때그때 찾아보는 데 불편이 없을 것이고, 추가적인 공부를 위한 참고문헌도 잘 정리되어 있다. 얄팍한 상술을 부렸다면 네 권으로 만들 수도 있는 분량을 한 권에 다 담았으니 요즈음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생명체는 DNA의 생존 기계

리처드 도킨스는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을 (앞서 언급한 초신성의 잔해에서 시작한 무거운 원소로 만들어진) DNA(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계속하면서 40억년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역시 초신성의 잔해로부터 생긴 원소로 구성된) 이것저것을 모아서 짜맞춘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라고 정의한다. 생존 기계를 잘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살아남는 게 자연의 법칙인 셈이다. 유전자는 호르몬 등의 물질을 동원해 생존 기계를 홀림으로써 자신의 복제유전자가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새 생존 기계(후손)를 만들게 한다. 새 생존 기계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기존의 생존 기계는 더 이상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화 및 자살 유전자(실제 존재한다)가 작동되는데, 이것이 생명체의 노화와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수십억년 동안 성공적인 복제 외길을 걸어온 ‘유전자 어르신’에게 조금씩 반기를 드는 개체가 출현했으니 ‘뇌라는 부속품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한’ 사람이라는 생존 기계다. 우리 뇌는 심지어 유전자를 속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전자 입장에서는 수백만년 전부터 자기의 수족 역할에 충실하던 인류가 머리가 커져서 버릇없이 콘돔이란 걸 만들어 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물론 콘돔도 이미 복제되어 생존 기계를 획득한 유전자 입장에서는 경쟁자의 출현을 줄이는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콘돔이 그런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할 만큼만 운동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능력을 넘어 운동을 아주 잘할 수도 있다.

인류를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와 비교할 수 없는 반열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준 것이 바로 ‘뇌’이다. ‘뇌, 생각의 출현’을 읽다 보면 저자인 박문호 박사의 뇌는 어떻길래 이런 방대한 분량의 뇌신경과학, 천체물리학, 양자역학, 불교철학 및 역사공부를 지치지 않고 해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저자의 책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분명 오랜 공부가 늘 즐거울 수만은 없었을 테니 때로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겠지만, 저자 뇌의 내부 시스템들이 상호작용하는 벡터를 다 합해보면 지금까지 움직여온 방향이 가장 덜 힘든, 따라서 가장 편안한 방향이었을 것이란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부를 못 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고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동억 동국대 일산병원 신경과장, 뇌졸중 전문의, 의학박사 dxtxok@hitel.net

댓글 없음:

댓글 쓰기

팔로어